바람의 땅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바람의 땅 아이슬란드의 레이캬비크 공항에 내렸습니다. 허술할 정도의 자유로운 공항 절차를 지나고 밖을 나오니 오전 8시. 겨울비같은 찬비가 강풍과 함께 마중나와 있습니다. 그 바람의 안내로 수도 레이캬비크로 달리는데 우선 일정에 필요한 식량과 연료등을 구매하고 단골 숙소에 특별대우로 일찌감치 들어가 씻고 잠 한숨 자고 거리로 나섭니다.
오랜 바이킹의 도시를 돌아보면서 아이슬란드 트레킹 일정의 시작과 마감을 어떻게 극적으로 할 것인지 구상도 해봅니다. 스바르티 폭포의 주상절리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이 도시의 상징같은 할그림스키르캬 교회 건물을 중심으로 조성된 번화가를 둘러보며 항구도시가 풍기는 비릿한 바다내음과 어부들이 남긴 삶의 향기도 떠올려봅니다. 이리저리 싸돌아 다니다가 바닷가에 조성된 노천온천장까지 흘러흘러 왔습니다.
아이슬란드 여행에서는 수영복과 타월은 항상 지참해야 하는 필수품 중 하나로 지역마다 도시마다 온천이나 온천물로 채운 수영장이 있어 무료거나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데 그 그윽한 유황 냄새가 향기롭습니다. 레이캬빅을 풍요롭게 적시며 흐르는 강이 바다를 만나 헤어지는 지점에 만들어 놓은 천연 노천 온천. 여름날에도 차마 수영조차 할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 이 온천수를 가두어 백사장에서 물놀이와 함께 유년의 축억을 갖도록 애써 놓은 것입니다.
레이캬빅 수도물은 천연 지하수를 냉수로 유황냄새 진한 뜨거운 온천수를 온수로 씁니다. 물맛도 아주 좋은. 그래서 숙소 벽에는 이렇게 알림판에 쓰여져 있습니다. 이 나라에서 병물을 사먹는 당신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밤이 존재하지 않는 백야. 눈을 감아야 어두워지는 북극권의 여름. 지긋이 눈을 감고 앞으로 걷게 될 지구 이외의 또 다른 행성같은 이 이방의 땅을 떠올리며 애써 잠을 청합니다.
아이슬란드는 지구가 가장 뜨겁고 소란스러웠던 시기에 해저 화산활동으로 생긴 섬이며 지구상 인간의 발길이 가장 늦게 닿은 곳입니다. 하이얀 빙하와 검은 화산. 차거운 얼음 아래 언제라도 웅크려 있다가 토해내는 뜨거운 용암. 푸르디 푸른 하늘 아래 장막하게 펼쳐진 연록색의 이끼산들. 상극의 대비가 아름다운 조화로 승화된 아이슬란드의 풍경입니다.
이처럼 상반된 극과 극이 만나 조화를 이루는 아이슬란드의 풍경을 단 한마디로 설명하기란 불가능합니다. 근자에 와서 세계 베스트 하이킹 코스중 하나로 급부상한 아이슬란드 종주 트레킹은 아이슬란드 하이랜드 지역의 보석같은 풍경이 집약되어 있는 란드마나라우가(Landmannalaugar) 야영장이 있는 온천 지역에서 출발하여 포스목(Thórsmörk)의 빙하 계곡까지 이르는 54km의 길이 라우가베구르(Laugavegur) 트랙의 클라식한 코스인데 가장 최근인 2010년 폭발이 있었던 화산의 민낯을 볼 수 있는 Fimmvörðuháls 고개까지 넘어 60m 높이의 스코가포스(Skogafoss) 폭포까지 연장해가며 아주 다채로운 풍광을 만끽할 수 있는 28km 거리를 추가함으로써 종주의 완성이 이루어진다 하겠습니다. 물론 이것을 역방향으로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 트레킹코스는 매년 6월 중순부터 9월 초까지 한시적으로 이용 가능한 곳으로 세계 각지에서 이 트레킹을 위해 아이슬란드를 방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산장의 규모가 40여명 선에서만 이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거의 일년전에 예약을 해야만 얻을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아이슬란드는 유라시아와 북아메리카 대륙판의 지각판이 충돌하는 곳으로 이 지구의 경이가 만들어낸 이질적인 자연 풍광은 반지의 제왕에서 죽음의 땅 우르도르의 밑그림을 그렸고 15소년 표류기를 쓴 쥬르베르는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치솟는 분화구 속으로 들어가면 지구는 모두 연결 될 것이라는 무한한 상상력을 키워주었답니다.
북극해와 맞닿은 아이슬란드는 뜨거운 김을 내뿜는 화산과 차가운 빙하를 모두 지니고 있는 극적인 자연환경으로 국토 전체가 트레킹 코스라 일컬어지는 트레킹 여행의 메카입니다. 화산지대를 지나면서 이끼에 덮인 바위와 유문암 재질의 산봉우리의 수려한 경관을 감상할 수 있죠. 화산 경관, 이끼 덮인 암석, 유문암 봉우리의 놀라운 풍경을 통해 지구의 진면목을 볼수 있는 생경한 길입니다.
시차에 백야 현상에 잠을 설칩니다. 또한 새로운 세상을 만나기 위한 기다림과 설레임 때문이기도 했겠지요. 아이슬란드의 여름은 6월에 시작하여 8월까지 이어집니다. 아이슬란드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계절이기도 한데 싫고도 좋은 백야 현상이 있는 시기입니다. 일몰과 일출이 연이어지는 한 시간 정도의 간극 동안 하늘이란 화판 위에 펼쳐지는 미려한 노을과 여명의 향연을 동시에 볼 수도 있습니다.
‘황금 시간’이라 이름지워진 이 때를 노려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작가들에게 아이슬란드는 하나의 로망입니다. 또한 우리 트레커들에게는 겨우내 닫혀있던 내륙 산간지방의 도로가 개방되면서 아이슬란드 최고의 트레일을 걸을 수있고 낮이 무척 길어진 덕에 적어도 시간에는 구애받지 않고 능력껏 걸으며 그 생경함에 푸욱 빠져볼수도 있습니다. 커튼 사이를 헤치고 들어오는 새벽 공기는 물기를 머금고 있습니다.
비가 오락가락하면서 해도 들락날락하는 참 변덕스런 아이슬란드 남부의 기후입니다. 여장을 꾸려 지구상 인간이 닦아놓은 길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하나인 라우가베구르 트랙을 종주하기 위해 동행들과 함께 길을 나섭니다. 인구 22만의 작은 수도를 벗어나는데는 십여분이면 족합니다.
국도로 바꿔 올라서니 섬 전역에 걸쳐 자생하고 있는 보랏빛 아이슬란드 국화 룩피나가 지천으로 피어있고 화산석으로 뒤덮인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을 방문한듯한 착각으로 시원스레 뻗은 신작로를 달려 종주길의 들머리로 향합니다.
아직도 후진성을 면하지 못한 이 나라의 많은 것들은 우리를 짜증나게 만드는데 교통체계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여기저기 들러서 사람들 태우고 하면서 4시간이 넘게 걸려서야 겨우 Landmannalaugar 야영장에 도착합니다. 모퉁이를 돌아 속계와 선계의 경계선 같은 제법 깊은 냇물을 건너면 갑자기 나타나 펼쳐내보이는 기막힌 풍경. 철분을 함유한 붉은 흙. 화산석과 화산재의 흔적인 검은 바위들.
유황이 빚어놓은 황색과 푸른색이 가미된 구릉과 낮은 산. 그야말로 무지개색 산하를 만들어 환영합니다. 더구나 원색으로 이루어진 각양각색의 텐트촌이 바탕을 이루니 총천연색 시네마가 상영되는 것 같습니다. 모두들 들뜬 마음에 오찬을 드는 둥 마는 둥 하고 간편한 차림으로 달려 나갑니다.
우리가 4박 5일간 진행할 종주길을 확인이라도 하듯 터진 지면 사이로 유황 수증기와 버블을 쏴올리며 언제라도 용암을 분출해내며 폭발할수 있다는 경고를 해대는 Brennisteinsalda 산의 등산로를 따라 올라갑니다. 산이라 하기에도 구릉이라 하기에도 뭣한 이 하이랜드의 낯선 풍경. 난생처음으로 접하는 묘한 지구 이방의 모습들을 보고 감탄을 넘어 경악의 표정으로 아무말도 하질 못합니다. 모두들 상기된 표정으로 내일을 기대하나봅니다.
오늘은 이곳까지 차량으로 이동해온지라 바리바리 싸온 음식으로 내일 아침까지는 황제처럼 먹을수 있고 그후로는 걸인의 식사가 될것입니다. 아이슬란드 방목육을 구워 거하게 한잔 곁들여 최후의 만찬처럼 즐기고 노천 온천욕을 하러 갑니다. 이 곳의 명물인 노천온천욕인데 유황내음 가득한 온천수가 솟아 올라 시냇물을 만들어 흘러가는데 곳곳에 돌로 막아 나름 수온을 조절하고 구분하여 산장을 이용하던 캠핑을 하던 수많은 방문객들이 즐기는 필수 코스로 자리매김을 해왔습니다.
이처럼 아이슬란드인들은 오래 전부터 지열 지대에서 생성되는 증기가 치료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답니다. 그리하여 많은 온천장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는데 그들에게는 온천욕이 뗄래야 떼어놓을 수 없는 삶의 일부가 되었고 겨울 시즌에는 풍성하게 내리는 눈을 맞으며 즐길 수 있고 음률없는 음악에 맞춰 총 천연색으로 아름답게 빛나는 오로라의 화려한 군무를 감상하며 즐길 수도 있답니다.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 여전히 주위는 환해도 이미 시각은 밤 10시가 가까워 오고있으니 내일부터 시작되는 본격 종주를 위해 오늘 하루를 접어야겠습니다. 다시 하늘에는 구름 한점 없는 청명한 일기입니다. 깃털처럼 가벼운 심신으로 하이랜드의 밤이 아닌 밤을 맞이합니다.
Laugavegur Trail. 동토의 땅 아이슬란드. 상반된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며 자연을 이루는 미지의 곳. 용암, 빙하, 야생화들이 지천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