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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화산의 심장속을 걷다. Alftavatn 산장가는 길. 

7시 까지는 미동도 허용하지 않는 Quiet Time. 그래도 워낙 부지런한 우리들은 채 여섯시도 되지않아 곤하게 자고 있는 한 외국인 커플을 깨우지 않으려고 조심스레 짐들을 챙겨나와 바깥에서 배낭을 꾸려놓고 주방에 들어가 아침을 준비하는데 16명 풀어놓으니 아무리 조심한다하도 그들에게는 소음인지라 결국 지적질을 당합니다. 하늘은 무정하게 푸르름을 숨기고 그저 낮게 드리운 구름안개만 자욱한데 새벽 풀잎에 맺힌 이슬을 차고나가며 종주의 첫발을 내디딥니다. 묵직한 배낭의 무게를 느끼며 오르는 초반 오름길. 화산암으로 다져진 길과 주변은 황금빛이 스며든 녹색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길을 오르면 나타나는 색다른 풍경. 황토빛 산들이 벌거벗긴 채로 이어지고 목화같은 풀들이 들판을 가득 채우고 뜨거움을 견디다 못한 지열이 땅과 바위사이를 찢고 나와 쌔액거리며 증기를 쏘아 올립니다. 한번씩 불어오는 한결바람에 실려오는 유황냄새 머금은 수증기는 얼굴을 촉촉하게 적시며 기분좋게 만들어 줍니다. 유황냄새가 진동하는 길은 오르락 내리락 하며 꽤 길게 지속되는데 점점 더 진행할수록 풀 한 포기 보이지 않고 대신 화려한 연록의 이끼와 황금빛 암석과 흑요석의 어우러짐이 신비롭기만 한데 가히 신이 남긴 걸작이 아닐수 없습니다.

내가 처음 이 아이슬란드를 만났을 때의 인상은 누구나 그랬듯이 마치 태양계 밖의 이름 모를 낯선 행성에 불시착한 느낌. 차갑고 무거운 색으로 덮인 산들은 낮게 웅크린채 언제라도 표호하며 일어설것 같이 거친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초현실적인 자연의 절정체. 경이 그 자체인 이곳 대자연의 모습과 마주치게 되고 또 지나온 장대한 자연 경관 때문에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고 어떤 곳에서는 길이 아예 나를 멈추게 합니다. 바쁘게 살아온 삶 한번씩 되돌아 보듯 잠시 발길을 멈추고 지구가 아닌 또 다른 행성에 불시착한 것 같은 오묘한 원시 대자연의 품에서 가슴이 뻐근하도록 폐부 깊숙히 심호흡을 해봅니다.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에 머무르다 그리고 또 어디로 가는가?' 아이슬란드 하이랜드 초현실적 길을 걷다가 어느 한갓진 곳 생경한 비경 앞에 서면 누구나 한 번 쯤은 이런 상념에 젖게 하는데 오늘 바로 이 길위에서 이 질문을 나에게 던져 봅니다. 그 답은 이 아이슬란드를 떠날 때 쯤이면 얻을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안고 증기속으로 빨려들어갑니다. 



오늘 우리가 정한 루트는 첫날 Alftavatn 산장까지 25km를 걷는 가장 고된 날입니다. 힘이 충분할 때 많이 걸어놓자는 것인데 높지는 않지만 5백 미터 최고점을 향해 수도 없이 반복되는 요철의 길을 걷다보면 다들 지치게 마련이고 설상가상으로 악천후가 겹치면 그야말로 지옥같은 행군입니다. 궂은비 간단없이 종일토록 내리던 날 속절없이 뼈속까지 젖어버려 말수마저 꽁꽁 얼어버렸던 아픈 기억도 진저리치도록 떠오르는 순간입니다.

오늘은 다행히 바람도 많이 죽고 그래도 가끔씩 감질나도록 푸른 하늘과 햇살이 함께하니 이 인류 태초의 땅도 걸을만도 합니다. 모두 기쁨이 넘쳐 흐릅니다. 동행 하나가 나에게 눈물맺힌 시선을 주며 감사의 말을 전해옵니다. 대장님. 이렇게 아름다운 곳으로 자기를 데려와줘서 고맙다고.. 가만 어깨를 감싸주며 좁지않은 아름다운 길을 나란히 걸어갑니다. 금색과 연녹색으로 빛나던 산들이 하나둘 내뒤로 자취를 감추고 흥건하게 젖어가던 몸이 식어간다 여길 즈음에 추모비 하나가 길가에 세워져 있습니다.

이길을 걷다가 저체온증으로 요절한 일본인 남자의 이름이 새겨져있습니다. 추모비에는 몸을 피할 셸터가 그리 멀지 않았는데 라는 아쉬움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북극선에 가까운 이런 지역에서 트레킹을 할 때는 항상 최악을 대비한 모든 것이 우리네 배낭에 들어있어야 함을 다시 일깨워줍니다. 멀지않은 곳에 위치한 Hrafntinnusker 산장. 주변에는 만년설이 깔렸고 우리는 그 동토를 가로질러 이르게 됩니다. 여름 햇볕에 제법 녹아 만년설의 표면은 아이젠 없이도 걸을만 한데 조금 더 위로 올라가 깨끗한 눈위로 걸으며 아무도 밟지 않은 눈위에 나만의 발도장을 찍으며 건너갑니다.

여기에서 중식을 취하고 잠시 휴식 후 Reykjafjoll 빙하지대를 따라 Jokultungur 까지 더욱 많이 뻗쳐있는 빙하들 심지어는 얼음동굴까지도 접하면서 행복한 걸음을 이어갑니다. 전방에도 측방에도 장대하게 펼쳐지는 끝없는 지구의 또 다른 모습. 눈도 발도 지루할 겨를이 없습니다.

이제 Alftavatn 산장이 발아래 아득히 보이는 고개마루에 섰습니다. 산장을 품고 있는 호수가 차분히 누워있고 멀리 빙원들이 흰눈을 덮고서 장엄한 픙경을 자아내고 있습니다.시선을 위로 올려보니 눈이 부시도록 푸른 하늘과 그 위에 떠있는 양떼 구름. 그 아래 나지막이 자리한 호수 옆 빨간 지붕의 Alftavatn 산장이 한 폭에 어우러져 빼어난 풍경화 그려냅니다.

이제 저기쯤 빤히 보이는데도 Jokultungur에서 부터 올라온 만큼 한시간 반 가량 내리막 길이 이어지는데 녹색의 풀이 가득한 슬로프를 따라 지겹다 여길만큼 걷게됩니다. 무릎에 좀 무리한 시그널이 온다 싶은 때 처음으로 이 구간에서 강물을 건너는데 마음 독하게 먹고 준비해야 합니다. 그냥 아픈 통증이 가해지도록 너무도 차갑습니다. 그래도 건너고 나면 아픔을 말끔히 치유한 후처럼 발도 마음도 그렇게 시원할 수 없습니다.

이제 산장이 코앞으로 다가왔으니까요. 냉장고의 의미가 별로 없는 이 길에서 매점 맥주 사다가 갈증을 풉니다. 잔바람에 반짝이는 물결. 원색의 텐트 촌. 문득 이 호반길을 더 걷고 싶은 충동이 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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