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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것 그대로의 야생을 맛보는 길. 

어둠이 가시고 뿌연 하늘이 얼굴을 내미니 우리도 그제서야 부산한 아침을 엽니다. 제한된 주방 설비와 식탁. 세면장. 화장실 등. 아침마다 소리없는 전쟁이 벌어집니다. 서로 보면 웃음을 주고 받아도 마음은 먼저 차지해야할 곳에 가있습니다.

어제는 제법 많이 걸었고 대신 오늘 일정은 15km를 걷는지라 여유가 있으니 빙하 위로 떠오르는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느긋하게 준비하고 Alftavatn호수의 정경을 바라보며 영혼을 세척하고 길을 나섭니다. 비가 한방울 두방울 시나브로 내립니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지금 날씨가 싫으면, 5분만 기다리세요“라고 말한답니다. 이 말은 하루에 4계절을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자주 바뀌는 아이슬란드의 기후.

날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북극 한계선에 위치해 있지만 아이슬란드의 기후는 생각보다 온순한 편인데 북상하는 멕시코 난류의 흐름 덕분이라 합니다. 7월이 년중 가장 더운 달로 평균 기온이 10도에서 13도 이며 아이슬란드의 겨울은 1월이 가장 추운 달이지만 대체적으로 안정적인 편으로 평균 기온은 0도 안팎이랍니다. 아침 여장을 단단히 챙기고 신발끈도 동여매고 동산 하나 넘었는데 이내 물을 건너라 합니다.

이 트레킹을 하는동안 네번의 도강을 하게 되는데 갈수록 물은 차가워져 정신이 바짝 들게하다가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수반되기도 합니다. 그 못사는 네팔도 히말라야 계곡마다 다리를 준설해 두었는데 왜 다리를 놓지 않을까 이내 빙하강물을 만나면 내를 건너주고 Storasula 화산과 2500년전 용암이 흘러가며 쓸어내린 Maelifellssandur 사막 지역으로 들어섭니다. Hattafell이라 불리는 정상이 평평하게 생긴 특이한 화산을 지나고 검은 사막지대를 지나면서 Eyjafjallajokull과 Myrdalsjokull 빙하를 감상하며 이어집니다. 아이슬란드 여행은 북극권의 여행입니다.

연전에 시행했던 아이슬란드 링로드 일주 트레킹이 문득 떠오릅니다. 길이 반지처럼 생겼다 하여 링 로드라고 이름 지어진 아이슬란드 중추도로인 1번 루트를 따라 12일간 달렸으나 고작 릴로드 가까이 소재하는 곳들만 가볼수 있었지 지구 태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변방은 엄두도 내지 못했었습니다. 아마 이 섬을 두루 섭렵하려면 꽤나 오랜 날들을 바쳐야하지 않을까 싶네요.

북극해와 맞닿은 아이슬란드를 한 바퀴 일주하며 스카프타펠 국립공원의 빙하지대, 화산 분출로 형성된 뮈바튼 호수, 드라마틱한 풍광을 연출하는 동부 피요르드, 그리고 내륙에 위치한 케르링가르프졸 등 산재한 볼거리가 무궁무진합니다. 유럽의 제일 끝 북쪽에 위치한 아이슬란드는 동서남북 모든 지역이 각각 독특한 특색을 지니고 있습니다.

북쪽은 폭발이 빈번한 화산과 용암이 흘러 내려 굳은 화산지대 남쪽은 얼음이 펼쳐진 빙하지대입니다. 또한 동부 어디든 황량한 해안선이 펼쳐지고 웨스트 피요르드에서는 극지를 제외한 지역 중 가장 많은 빙원이 관찰 가능합니다. 

야생화. 이 길섶에 간간이 피어있는 들꽃들을 봅니다. 제법 건조한 지역이라 이끼 대신에 야생화들이 제법 군락을 이루어 피어나기도 아니면 저홀로 한무덤씩 피워 있습니다. 주로 히더 종류인데 그 앙증맞은 보라색 얼굴이 귀엽고 이쁘기도 하지만 왠지 처연한 느낌이 드는 것은 그 춥고도 혹독한 오랜 겨울을 견뎌왔을 그들의 모진 생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찰나같이 짧은 여름에 피워낸 들꽃들의 만개.

더욱 슬프도록 아름답게 빛을 발합니다. 가만 그들 곁에 쪼그리고 앉아 하소연을 들어주고 있는데 뒤에서 외마디 외침소리와 지축을 흔드는 무리의 다가옴이 감지됩니다 승마하는 무리들의 질주입니다. 경험자들로 구성된 승마팀들은 선두와 후미에 선 가이드들과 함께 제법 속력을 내서 달리는 자못 스릴넘치는 스포츠로 도보 여행가들의 부러운 시선을 한껏 즐기며 지나갑니다.

이곳의 승마 투어는 별 굴곡이 없는 이곳 같은 평원길을 달리는데 승마 인원의 세배에 달하는 말들을 함께 동원해 안장도 얹히지 않고 야생마의 모습 그대로 해서 요란하게 한바탕 소란을 피우며 지나갑니다. 자욱한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사십여 마리의 야생마들의 역동적인 질주. 나의 야성을 자극하는데 선진국과는 달리 Horse Trail을 따로 내지 않고 도보길을 달리게 하며 동물들을 위해 만물의 영장이 옆으로 비켜나와 길을 터준다? 도저히 용납이 되지않아 속으로 욕이나 실컷해줘버립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속마음은 무척 부러워서 그런 것이랍니다. 그런 생각등으로 무심히게 걷다가 다시 도강을 위해 건널목으로 접근하는데 딱 보기에도 욕구불만과 심술로 가득찬 외양을 지니고 거의 굴러가다시피 하는 캐나다 산 아지매 하나가 시비를 걸어옵니다. 왜 정식 트레일이 아닌 곳으로 걷느냐고..

귀찮아서 오케이 하고 넘기려 했더니 동양인이라고 얕보았는지 계속해서 지적질을 합니다. 정식 길을 걷지않고 자연을 훼손할수 있는 길로 왔다며 훈계하듯이. 내 인내의 한계가 왔습니다. 니가 뭔데 우리에게 지적질을 하느냐. 우리는 이 길이 원래길이 아님을 안다. 하지만 우리는 저따위 인간이 닦아놓은 찻길보다 산길 자연의 길을 선호한다. 우리가 무슨 없는 길을 걸어왔느냐.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다녀서 선명한 길이 만들어졌지 않느냐. 본시 길이 어디 있더냐. 편리하고 좋아서 다니다 보니 길이 되는 것을. 훗날 이 양자택일의 길(Alternative Route)에서 우리가 왔던 이 길이 정식 트레일이 될것이다. 길도 생명이 있어 진화한다하고 일 절로 훈시하고 이어 이 절로 넘어갑니다. 그리고 니가 남의 일에 신경쓸게 아니라 그 시간 너에게 투자해라.

니 모습을 한번 봐라. 너의 그 모습이 이 아름다운 자연과 어울린다고 생각하느냐. 겸손하게 너 자신을 위해 좀 더 신경쓰라하며 동서양 육두문자를 조미료처럼 섞어가며 해댑니다. 슬며시 꼬랑지 내리는 그녀에게 마지막 내 최대의 표독스런 레이저 눈빛을 쏴줍니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그런 그녀를 그날 같은 산장 같은 다인실에 함께 묶게 합니다. 마주칠 때 마다 매서운 눈초리로 째려보니 슬그머니 눈길을 피하곤 합니다. 비록 11시까지는 마음껏 떠들어도 되는 자유시간이지만 어느 정도 떠들어야지 한잔 술이 들어가니 신경을 긁는듯한 두 여인의 요상한 웃음소리가 가히 최악입니다. 참다못한 우리 동행 중 현직 교사 한분이 지성이 철철 넘치도록 조용해줄것을 요청합니다.

그 순간 다시 눈이 마주친 그녀에게 눈길로 말해줬습니다. 이따위 너희의 행실이 공중도덕을 지키는 일이냐. 지적도 부탁처럼 이렇게 교양있고 수준 높게 해야하는 것이라고. 모른 척 시선을 돌리는 그녀를 한동안 뚫어지게 바라봅니다.

그 보복으로 1차 대전 때 굴러다니던 탱크소리에 맞먹는 세명이 합친 코골이 소리로 합주하면서 돌려줍니다. 그런 긴밤에 비와 강풍이 몰아치며 그 밤을 지겹고도 더 길게 느껴지게 만들어 줘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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