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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화의 조화가 아름다운 선택 받은 땅. 아이슬란드 

Emstrur 산장을 날려버리려고 작정한듯 불어닥치던 바람. 이런 날 또 아이슬란드인들은 이렇게 당부합니다. 바람과 대적하지 말고 그냥 바람으로 하여금 어서 지나가게 하라. 그래도 바람의 땅 아이슬란드도 밤을 지내고 새벽부터는 차분해지고 아침이면 고요함이 스며들어 평온의 아늑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길을 나서니 물기 머금고 함초롬히 들녘에 떨고있는 야생화들이 우리를 보고서야 조그만 얼굴에 함박  웃음꼿을 피우다 곁에 다가서는 발자욱 소리에 놀라서 가벼운 도래질을 합니다.

길가로 더욱 푸르러 가는 풀잎들과 연록색으로 퍼져가는 이끼류가 가득한 섬나라의 이 아름다운 들길을 따라 흥겹게 걸어갑니다. 위도상의 비슷한 위치에 놓인 다른 나라들에 비해 아이슬란드는 상대적으로 따뜻합니다. 그 이유는 앞바다에서 맥시코 난류와 북극의 한류가 합쳐지는 지점이라 그렇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유는 아이슬란드가 바로 지구의 열점 위에 위치해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슬란드에는 지열활동이 아주 활발하며 온천과 간헐천, 머드 가이저, 화산으로 가득하고 또한 가끔 지진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화산과 지진 때문에 위험하리라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고 오히려 방문자들은 은근히 화산폭발이 일어나 기막힌 볼거리를 얻을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지진은 아주 약하고 잘 일어나지도 않지만 최근 2010년에 발생한 거대한 화산 폭발로 유럽 창공 가득히 채워진 화산재로 인한 비행기 결항 대란을 빼면 지금까지 화산이나 지진으로 인한 큰 피해는 사실 한번도 없었습니다. 화산 폭발을 실제로 가까이서 본다면 그 가공할만한 자연의 힘과 위대함을 다시금 느끼게 하지요.

초반 언덕길을 오른 후 걷는 길은 큰 기복없이 편안하게 멀리 확보된 시야로 가까이는 아이슬란드인들의 문화적 유산과 호수를 담은 풍경들을 음미하고 멀리는 아스라한 하이랜드의 빙원과 만년설산을 배경으로 한 풍광들을 눈에 담을수 있습니다. 연녹의 이끼산과 산하만 보고 걷다가 이제 가을날 처럼 황금빛으로 물든 잡풀들이 무성한 들녘을 바라보니 그저 광풍에 놀란 내 마음도 풍요로워지고 안정이 되는 듯 합니다.

이제는 마주오는 사라뜰과 제법 마주칩니다. 반대편에서 시작한 트레커들이 대부분인 이들과 이 자연의 풍요 속에서 반가운 수인사를 나누며 진정 마음의 평화를 누리며 미풍에 실려 갑니다. 참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이렇게 살아 걸으며 호흡할 수 있으니까요. 



Emstrua 산장을 떠나 발아래 빙하 진흑탕이 연기를 내며 뿜어내는 다리를 건너서 Emstrua강을 따라 산마루를 걸으면 펼쳐지는 풍경이 너무도 아름다워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수려한 현무암으로 뒤덮인 산과 Unicorn이라고도 불리는 독특한 형태의 Einhyrningur 화산과 그 협곡들을 오른편에 두고 걷습니다. 강을 바로 건너기에는 너무 깊고 세차서 한바퀴 휘둘러 걸으며 가장 좁은 지점에 낸 다리를 통해 길은 이어집니다.

그만큼 미려하게 나타나는 풍경앞에서 사진도 몇컷 찍고 수수한 길을 걷는데 주변은 여지껏 본 적 없는 새로운 광경이 펼쳐집니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과 유니콘(Unicorn)이라는 작은 고깔 모양으로 솟은 산들이 이끼로 뒤덮여 있고 산들이 품은 작은 호수와 그 배경에는 빙하에 덮인 고산 물결이 버티고 있습니다. 강을 건너고 우람한 황소의 뿔처럼 날카롭고 뾰족하게 다듬어진 묘봉을 가진 스토라슐라(Storasula) 화산을 곁에 두고 검은 용암지대를 지나서 사막처럼 드넓게 펼쳐진 검은 모래밭에 발자국을 남기며 무심하게 걷다보니 다시 푸르름을 머금은 생명체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촉촉한 이끼와 풀들이 무성한 비탈진 곳에는 꼭 서너마리 소가족으로 구성된 듯한 양들이 옹기종기 엉덩이를 맞대고 풀을 뜯는 일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 또한 아이슬란드의 독특한 풍경으로 소개된답니다. 그린란드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아이슬란드는 32만명 인구로 우리나라 남한 크기의 면적인 동서로 500km 북남으로 300km로 펼쳐져 있는데 화산활동으로 생긴 섬입니다.

북극해 바로 아래 위치한 북대서양의 섬나라, 아이슬란드는 분명 지구촌 이방의 나라로 그 옛날 150년전 지독한 화산 폭발로 지옥이라 여겼던 그 천형의 땅에 정착한 용감무쌍한 바이킹들이 얼음밖에 보이지 않는 땅이라며 ‘Ice land’라 이름 붙인 곳입니다.

실제로 국토의 10%가 빙하로 덮인 차가운 얼음의 땅인데 그 동토의 땅 위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부조화의 조화가 존재하는 바  화산에서 분화구가 불을 뿜어내고 용암이 흘러내리는 불과 얼음의 땅입니다. 2010년 최근까지도 화산이 분출하여 유럽의 항공 대란을 야기했던 땅속 깊숙이 뜨거운 열기를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시시각각 격렬하게 끓고 있는 용암의 열정과 냉혹하고 차디찬 빙하 그리고 더없이 수려한  연록의 이끼와 삭막하고도 황량한 사막 고원 등 지구 상 가장 극적인 풍광을 다채롭게 만들어 내는 나라임에 분명합니다. 

한국에서는 참으로 먼 나라. 지구를 반 바퀴 돌아야 내릴수 있는 나라. 이름부터 얼음 땅, 아이슬란드가 아닌가. 외딴섬, 꿈틀거리는 화산. 그래서 이 아이슬란드의 생경하면서도 낯선 아름다움 때문에 소설 집필의 영감을 주고 영화 촬영지로서도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톨킨의 ‘반지의 제왕’과  영화 ‘인터스텔라’ ‘노아’ ‘프로메테우스’ ‘토르:다크 월드’ ‘오블리비언’ ‘툼 레이더’ ‘스타트렉 다크니스’를 비롯해 미국 TV 드라마 ‘왕좌의 게임’도 아이슬란드에서 촬영했다 합니다.

더 흥미로운 건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아프가니스탄, 그린란드, 히말라야로 나오는 배경이 실제로는 전부 아이슬란드에서 촬영됐다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아득히 멀리 ‘15소년 표류기’로 유명한 쥘 베른의 소설 ‘지구 속 여행’의 무대이고, 이 소설을 토대로 한 할리우드 영화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2008)도 이곳에서 촬영됐습니다.

특히 검은 해변에는 물속에 떠있는 뾰족한 기암들 때문에 빙판위를 달리던 차량들이 강인한 인상을 남긴 ‘분노의 질주’ 아이슬란드 편이 촬영된 곳으로 유명세를 타는 곳입니다. 고전이나 베스트 셀러가 된 문학 작품의 배경이 된 도시를 찾아 기행하는 맛도 깊은 의미가 있듯이 이 특별한 풍경을 곳곳에 숨겨둔 이 아이슬란드에서 영화 촬영지를 찾아 떠나는 여행도 결코 나쁘진 않을듯 합니다. 

중식 후 화산재가 부서져 쌓인 검은 자갈밭을 따라 걷다보면 피곤함과 더불어 무료함이 몰려 올 때쯤 미르달스예퀴들(Mýrdalsjökull) 빙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 거대한 얼음 왕국은 거대한 칼데라와 함께 활화산인 카틀라(Katla)산을 품고 있는데 아이슬란드에서 네 번째로 크다는 아이스 캡(Ice cap)으로 그 웅장함은 이 길위에서 볼수 있는 특유의 풍경입니다.

이  거대한 빙하 앞에 서면 인간도 그저 한 알의 자갈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껴집니다. 죽어지면 한줌 흙으로 대자연의 품으로 돌아갈 뿐인 우리의 존재. 한없이 작아지는 순간입니다. 자연이 연출하는 풍경이 너무 위압적이어서 인간의 능력 따위는 이곳에선 아예 잊어버려야 할 것입니다. 사람 살기가 쉽지 않은 땅, 그래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탐험가와 관광객에게 환영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풍경에 취해 한참을 정신줄 놓고 걷다보면 마지막 도강을 해야하는 넓은 강을 만나게 되고 잠이 확 달아나버립니다. 오늘은 강물이 갈기갈기 찢어져 있어 한번에 건너는 것이 아니고 수차례 그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는 차디찬 빙하녹은 물에 맨발로 걸어야 합니다. 강을 건너 숲이 무성한 오솔길로 들어서면 이제 아이슬란드도 더이상 수목이 자라지 못하던 천형의 땅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고 앞으로 지구가 더 따뜻해지면 더 깊은 곳까지 인간의 발길이 이어질 것입니다.

키가 자라지 못한 블루베리를 따먹으며 오솔길은 그대로 포스목까지 이어졌고 이내 끝날것 같은 종주길이 언덕을 한두번 더 오르내린 후에야 순백의 아름다움을 발산하며 빛나고 있는 Eyjafjallajokull 빙하를 머리에 이고 서있는 Thorsmork에서 가장 오래된 고즈넉한 산장 Langidalur에 이릅니다. 여장을 내리고 주변 풍광을 앵글에 담으며 모두 모였을 때 종주를 자축하며 기념촬영과 함께 맥주로 갈증을 풉니다.

붉어가는 이른 석양빛을 받으며 바람도 잠든 따사로운 산장 밴취에 앉아 태양빛이 스러지는 이국의 하늘을 보며 긴 한숨을 몰아쉽니다. 종주길 끝에서 느끼는 늘 허기진듯 허전하면서도 아쉬운 느낌. 그래서 나는 이 길을 다시 찾게 되나봅니다. 

아이슬란드를 다녀오면 누구나 마음의 병을 앓게 된다고 합니다. 아이슬란드 음악을 듣거나 아이슬란드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면 또다시 아이슬란드 여행을 꿈꿔야 하는 마음의 병 말입니다. 지구 태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자연의 보고라 불리우는 아이슬란드! 암울한 수묵화를 보여주다가 총천연색의 파스텔화로 바뀌던 반전의 연속. 바람과 세월이 빚어 놓은 기묘한 형성의 바위들.

전설속에 등장하던 그런 거대한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는 검은 산들. 차디찬 물과 뜨거운 불이 공존하는 신비의 땅. 영겁의 세월 동안 자연의 윤회를 거듭하며 다져진 빙하. 유황냄새 진동하던 수증기를 뿜어내며 자아낸 지구 이방의 풍경. 현실을 망각한 채 빠져들게 한 몽환적이고도 비현실적 자연. 몽환의 세계로 안내하는 곳. 이제는 모두가 꿈처럼 아득한 채 다시 그리워지는 그 미친 바람. 모두가 내 기억 가득히 판각처럼 새겨져 있습니다.

레이캬빅 문명의 세계로 돌아와 늦었지만 아이슬란드가 자랑하는 세계 최대 최고의 온천 리조트인 노천 온천 블루 라군.으로 달려갑니다. 유황 온천으로 밤 온천욕을 즐기며 시도 때도 없이 솟구쳐 오르는 간헐천은 섭씨 100도가 넘습니다. 밤 온천욕을 함께 즐겨봅니다. 우유빛 짙은 물에 몸을 담그면 그 물빛에 물들어 버릴것 싶은데 밤이라 그 빛이 아쉽지만 마음만은 빠져들어 충분히 즐길수 있습니다.

짙은 유황 내음에 빠져들어 심호흡을 하면 깊은 안식과 혼줄을 놓아버릴 정도로 차분해지는 마음입니다. 숨가쁘게 달려왔던 끝없는 트레킹의 유랑. 지구를 수십바퀴 돌았던 지난 날들의 여정을 되돌아보며 깊은 상념의 시간을 향유합니다. 그 숱한 사람들과의 우정.

늘 다른 모습으로 반겨주던 자연의 모습. 때로는 극한 고독과 싸우며 홀로 버텼던 지난 여정. 모두 꿈으로 아름답게 가라앉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시작될 새로운 유랑. 눈을 지긋이 감고서 또 상념의 꼬리가 물려 이어지니 지구 반대편 어느 하늘 아래서 장대한 대자연과 깊은 눈맞춤을 하고 있는 내가 보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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