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의 시작점인 또농 레 방(Thonon-les-Bains)의 작은 포구에서 GR5를 상징하는 녹색 사각 바탕에 흰색과 붉은색의 직사각형 길표식을 따라 대망의 종주가 시작됩니다. 이내 가파른 도시를 관통하며 오를수 있는 페니큘라가 있는데 우리는 무시하고 소담스런 마을길을 걸어 올라갑니다.
한적한 마을의 아스팔트길을 가로질러 호수의 풍경을 훔쳐보며 벗어나면 초지가 나오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고 이제 산길로 접어듭니다. 네덜란드에서 시작한 GR5가 이 호수에서 막히면 몽퇴르나 로잔에서 페리를 타고 건너와 잇는데 이 언덕에서 그들이 눈에 잡힙니다. 마을이 끝난 공원에서 비로소 시장기를 느끼고 제법 쌀쌀해진 가을날씨에 햇볕을 쫒아 선채로 샐러드 한그릇씩 비우고 다시 비탈길을 오릅니다.
부담없는 길을 한참 올라 아흐무아(Armoy)에 도착해 차한잔의 여유를 갖고 이어지는 마을과 산길을 반복해 걸으며 몽 바홍(Mont Baron)의 기나긴 오르막을 오르니 이제서야 멀리 알프스 산군의 설경이 희끗희끗 보입니다. 산을 만나면 특히 미답의 길을 처음 걸으면 이번에는 어떤 풍경을 대하고 어떤 풍물을 만날까 두근거리는데 마치 선물상자를 안고서 어서 펼쳐보고 싶어하는 어린 아이가 됩니다.
그리고 또 별 기대를 하지 않았거나 예상도 하지 못했던 가슴 벅찬 풍경으로 뜻밖의 선물을 받았을 때는 잠시 정신까지도 혼미해지는데 이런 예기치않던 선물은 더욱 감동을 주는 법입니다. 비탈길을 내려오면 라 쁠랑타즈로 들어서고 분주했던 하루를 쉬게합니다. 석양이 레만호를 강렬한 붉은색으로 화려하게 물들이는 호수 풍경을 바라보며 와인을 곁들인 저녁으로 노독을 달랩니다.
샬레 드 비스(Chalets de Bise)를 향한 오늘길은 출발부터 계속 오름길은 이어지고 목장들이 목가적 수려한 풍경을 만들어내는 그 속으로 들어가면 형형색색의 철지난 야생화들이 화려하게 수를 놓습니다. 가을색이 살포시 내린 그러나 아직은 빛이 바래지않은 광활한 초록의 능선이 펼쳐지는 알프스는 힘들어지는 만큼 더욱 장엄하고 황홀합니다.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는 너덜지대를 지나 또 능선을 넘어 콧노래부르며 풍경에 취해 가다보면 어느새 한마을을 지나고 마침내 종착지에 도달하곤 합니다. 아담한 마을들을 지나면 동네에서 제일 높은 집은 의당 교회인데 마을 중심에 어김없이 잘 지어져있습니다. 국민의 80% 이상이 믿는 카톨릭이라 정성을 다해 지은 성당은 하나하나가 예술 걸작품이며 길가는 나그네의 목을 축이게 하는 수도가 있고 마를 사람들은 신앙이외에도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모이기도 하는 곳이랍니다.
그 연륜을 말해주듯 고색이 창연한 담벼락에는 담쟁이 넝쿨이 지붕까지 올라가 그들의 생애 가장 아름다운 색으로 불타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골 산촌인데도 오래된 돌집이든 나무집이든 깨끗하게 단장을 하고 대부분이 가지런하고 단아한 꽃나무를 식재해 시각과 후각을 즐겁게하고 창문에는 빨간 제라늄 화분을 걸어두니 새삼 그들의 정서적인 선진성과 낭만을 부러워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목장과 더불어 산장, 레스토랑, 치즈 가게도 있어 차량을 이용한 관광객이 많이 찾는 명소인 샬레 드 비스에 도착하니 저녁밥을 위해 바게트를 한아름 가슴에 안은 알프스의 하이디가 종종걸음으로 옆을 지나갑니다. 이방의 저녁시간. 문득 시장기가 몰아칩니다.
GR5의 가을 프랜치 알파인을 걷는 이길. 2천미터 이상의 고봉들이 펼쳐보이는 산악풍경과 어느새 쌓여버린 희끗희끗한 설경을 감상하며 걷는 행복한 길. 아침을 먹고 바로 비탈길을 올라 아침 햇살에 불붙는듯 황금색의 석벽들을 지나 작은 고개 하나 넘으니 이제 마을 너머로 알프스의 산군들이 장대하게 펼쳐집니다. 그 너머 구름 뒤에는 레만 호수가 숨어 있습니다. 농가를 지나 산정으로 오르는데 발가벗은 바위산 미봉들은 비끼는 햇살에 빛나고 있고 주변 부지런히 풀을 뜯는 소들의 묵직한 워낭소리가 계곡을 메웁니다.
스위스의 워낭은 무슨 자랑이라고 모든 기념품 가게에서 실물크기에서 부터 다양한 사이즈로 제작해 팔고 있는데 부끄럽지도 않은지. 그렇게 무겁게 한 이유는 머리를 들지못하게 해서 쉼없이 풀을 뜯어먹어 무럭무럭 자라나라고 하기 위함이라 합니다.
이 수려한 산천경계도 봐가며 먹게 해야지 아무리 말못하는 짐승이라고.. 그래서 전 세계 동물애호가들에 혹한 비난을 받는 이유랍니다. 산정이 가까울수록 땀은 비오듯 쏟아지는데 길가에는 하얗게 내린 서리와 얼어버린 개울물들이 차마 옷을 벗지못하게 합니다. 이 높은 곳에는 이미 한겨울이 찾아왔나 봅니다.
유럽의 중남부에 거대한 성곽처럼 우뚝솟은 알프스의 준봉들을 이은 ‘GR5’. 그 중에서도 첫 번째 알파인 섹션이자 가장 알프스를 잘 담은 구간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