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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구간도 제법 알려진 길인지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거대한 알프스 산줄기가 펼쳐진 길이라 당연하겠지만 위태로운 사면 길을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내려오는 어린 형제 등산가들을 만납니다. 제몫의 배낭들을 매고 조심스럽게 발을 떼는데 그 진중함이 자못 전문가다워 웃음을 자아내게 합니다. 이렇게 어릴때부터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배워왔으니 인성을 키움도 물론이거니와 그래서 세계적인 산악인들을 배출해내는 것이겠지요.

우뚝 솟은 마운트 바론(Mt. Baron)이 우리를 유혹해 종주길에서 잠시 벗어나 산정을 향해 땅에 코가 닿을듯한 비탈길을 치고 오릅니다. 정상에는 대형 십자가가 멀리 호수를 바라보며 서있습니다. 발아래 좌측으로는 오늘 마감할 길과 마을이 보이고 우측으로도 촌락들이 듬성듬성 이루어져 있는데 그 크지않은 마을들에 제법 큰 규모의 호텔들도 보입니다. 이런 후미진 곳에 손님들이 있을까 쓸데없는 걱정을 해주다가 여름이면 하이커 겨울이면 스키어들이 찾겠다 자문자답을 합니다.

미려한 산행길은 또 겨울이면 어김없이 스키 슬로프로 바뀌는 알프스 산촌입니다. 멀리 이길의 끝에서 만나게 될 알프스의 지붕 몽블랑이 그 웅태를 보여줍니다. 능선을 따라 쉼없이 오르내리다 보니 내 그림자가 조금씩 길어지고 피곤함이 밀려올 때 지리한 하산길 끝에 레스토랑의 스위스 국기를 만납니다.

주말이라 그런지 수많은 사람들이 왁자지껄한데 시원한 스위스 맥주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한자리 꽤차고 한조끼씩 들이키니 너무 차가워 머리가 부서질 것 같았지만 그 찰라의 고통은 이내 청량감으로 하루의 피로가 풀리고 나른해집니다. 하루해가 길게 쳐져눕고 알프스 변방의 노을이 아름답게 물들어갑니다. 

싱그러운 알프스의 향기로 아침을 열고 서둘러 길을 나섭니다. Bosse 패스를 넘고 d’Umeon 고개로 오르는 길. 제법 모여든 사람들도 다양한데 산악 자전거를 탄 무리들도 보이고 저마다 장엄한 알프스를 각자의 방식으로 즐기고 있음을 볼수 있습니다. 숙식을 모두 제공하는 산장은 북새통입니다.

달력을 확인하니 토요일. 가족단위로 방문한 무리들이 식사를 하고 커피도 마시고 또 곡차를 사랑하는 이들은 맥주나 와인을 끼고 있습니다. 좌우로 치고 오르는 고갯길 계곡에 있는 이 산장은 그야말로 명당으로 높은 바위산이 양편으로 펼쳐져있어 주변 풍경이 압권인데 그 풍경을 바라보며 잠시 즐기는 시간도 참 좋겠다는 부러움이 입니다. 갈림길 표지판은 빼곡하게 채워진 길안내로 제 밥값을 하는데 사방으로 흩어지는 길이 이곳이 사통팔달의 요충지임을 이내 알아챌수 있습니다.

고개로 오르는 길이 선명하게 보이기도 하거니와 이미 등반을 시작한 이들의 걷는 모습을 추적하며 길의 흐름을 짐작할수 있습니다. 두시간을 꼬박 헉헉대며 올라야 할 길이 말입니다. 우선 거친 숨을 몰아쉬며 보세 고개에 올라 심호흡을 하고 잔돌이 발길에 채이는 돌길을 더 올라 우메온 고개를 넘어서니 기다렸다는 듯 펼쳐보이는 최고의 경치 앞에서 흐뭇한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대한 바위 한덩어리가 그냥 산이 되고 벌집 같은 바위산도 서있습니다. 이렇게 감동스러울 수 있을까! 두고 가기에는 너무나 아쉬운 아름다운 풍경. 이제 더욱 가까워진 몽블랑이 먼저 반깁니다. 어서와서 품에 안기라고 두팔을 벌린채 말입니다. 구름 한점 없는 하늘은 청자빛으로 더욱 깊어가고 발아래 펼쳐진 대단한 풍경이 심장을 떨리게 합니다. 그냥 이대로 머물고 싶은 마음입니다.

혼줄을 잠시 놓은 채 한참을 머물다 뒷사람들에게 풍경을 넘겨주고 다음 포상을 받기 위해 발걸음을 옮깁니다. 고개를 넘어 하산하는 길 옆 목동들의 여름 안식처엔 스위스 국기가 힘차게 바람에 펄럭입니다. 

다음 산을 넘기 위한 또 하루의 여정. 겨울이면 스키장으로 세인들이 모여드는 곳이자 정상의 풍경이 빼어나 인파들이 제법 붐비는데 그들을 뚫고 비교적 평탄한 길을 따라 알프스 경치를 마음껏 음미하며 여유롭게 걸어갑니다. 다시 오르내림이 반복되었지만 광활한 황금빛 능선이 펼쳐지는 알프스는 우리를 행복하게 했으며 힘들어지는 만큼 알프스의 풍경은 더욱 장엄하고 황홀합니다. 한적한 베흐(Vert)호수를 만나면 차한잔의 여유를 갖고  이제 쿠(Col de Coux)고개를 향하여 오르막을 오르는데 만년설산이 더욱 높이 솟아오릅니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세찬 바람이 먼저 버선발로 달려오는데 막대기 대충 꼽아놓고 스위스와 프랑스간의 국경이랍니다. 다양한 모양의 산들이 얽히고설켜 물결치듯 펼쳐집니다.

짙은 가을색이 산정에 가득한데 지난밤에 내린 비가 병풍같은 암산에는 눈으로 내려 더욱 웅장합니다. 그 설산을 배경으로 능선을 걷는 동행들의 모습이 정말 눈부시게 멋집니다. 바람을 피해 잠긴 셸터 뒤에 몸을 숨긴채 양지바른 곳에서 점심 식사를 합니다. 우리와 거리를 두고 같이 점심을 먹게 된 한무리의 우리 또래의 서양인들. 바게뜨 하나로 떼우지만 와인과 함께 하는 그들의 낭만적인 삶이 보기에 참 좋습니다.

더욱이 이 길은 Italy의 Trieste에서 시작하여 Monaco까지, Slovenia, Austria, Germany, Liechtenstein, Switzerland, France 등 8개국을 통과하며 알프스 산맥을 수없이 넘으면서 적어도 150일은 걸어야 하는 Via Alpina의 Red Trail이 겹치는 구간이라 그 의미가 깊습니다. 내가 조만간 꼭 걸어보고 싶은 버킷 리스트의 최상단에 놓여있는 장거리 도보길입니다.

마을을 굽어보는 대형 십자가 앞에서 잠시 묵도를 하고 참페히(Champéry)의 비탈길을 조심스럽게 한참 내려온 끝에 Golese 산장이 나타나니 맥주 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산허리를 끼고 구불구불 이어진 임도를 따라 사모앙(Samoans)으로 가파르게 내려갑니다. 어느덧 다시 프랑스 영역으로 들어서고 스키 마을 사모앙의 숙소에 지친 하루를 내린 후 와인과 함께 꿈같은 휴식에 젖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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