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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모니로 향하는 길은 어느새 바짝 다가섰습니다. 도심을 지나 산길로 들어서면 인적이 드문 기암 사이로 놓여진 철 계단을 타고 오릅니다. 그 후 산길을 벗어나 다시 마을로 들어서는데 인근 라 그랑 주(La Grande Joux)에는 큰 폭포가 마중을 나옵니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정차해 사진들을 찍곤하는데 우리도 물세례 한번받고 계곡을 따라 고개를 넘기위해 치고 오릅니다. 이 계곡에는 가을색이 완연하고 샛노랗게 물든 단풍들이 미려하게 산하를 덮고 있습니다. 푸르디 푸른 고운 하늘이 산들을 받쳐주고 더욱 청아하게 들려오는 정갈한 시냇물 소리.

그 끝에는 또 하나의 장대한 폭포가 유장하게 내리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다들 인생샷 하나씩 남기고 길을 꺾어 이 GR5의 종주길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기에 최고의 장소가 될 앙텐느 산장(Refuge d’Anterne)을 향해 이리저리로 휘돌아가며 오랜 오름길을 이어갑니다. 고도를 높일수록 지나온 계곡의 가을빛은 더욱 선명해지고 두고온 사모앙 마을이 모두 눈에 들어옵니다.

오늘의 정점에 올라서니 울산바위를 더 웅대하고 더 많이 갖다놓은 것 같은 대단한 테트 아 란느(Tete a l’Ane) 산이 솟아오르고 이 병풍 같은 산은 웅장함에 아름다움까지 자아내고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오늘의 노고를 달래기에 충분합니다. 눈앞에는 산들이 겹겹이 이어지고 깊지않은 계곡 건너 설산아래 산장이 단아하게 자리잡고 연기를 피우고 있습니다.

그 뒤로 구름속에 숨은 몽블랑 산군이 버티고 있는데 카메라의 앵글속으로 동행들이 들어오니 함께 알프스의 가을 풍경이 되어 한 장의 예쁜 그림엽서가 만들어져버립니다. 황혼이 짙어가고 서산낙조가 하늘을 붉게 물들이면 호수를 감싸고 있는 바위산 테트 아 란느가 함께 황금빛으로 타오르며 우리들 손에 쥐인 와인잔에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마침내 종주를 마감하는 날. 프랑스 최고 산악마을이자 알피니즘의 발상지. 유럽 최고봉 몽블랑이 누워있는 곳. 샤모니 몽블랑으로 입성하는 날입니다. 아쉬움을 남겨두고 산장을 떠나는데 걷히지않은 아침 안개에 가려진 미지의 길에 대한 설레임은 앞서서 걸어가는 동행의 발걸음에서부터 전해집니다. 다급해지는 발걸음입니다. 어서 만나고 싶은..

퐁 드 살레(Pond de sales)에서 다시 급경사진 오르막을 오르면 해발 2천미터가 넘는 곳에 물빛 고운 앙텐느(Anterne)호수가 우리를 반겨줍니다. 다시한번 호수에 비치는 테트 아 란느 산의 장엄한 위용을 감상하고 그 후로는 제법 길게 오르내림이 이어지는데 때묻지 않은 순수의 알프스를 접하게 됩니다.

산악마을에 사는 주민들이 소통을 하고 왕래를 하며 걷던 삶의 길이 오늘날 레저나 스포츠의 트레일이 되었습니다. 미답의 길을 걸었던 최초의 주민은 이 계곡을 건너며 어떤 감흥에 빠졌을지 대충 짐작이 갑니다.

이제 마지막 오름길. 그 정점에 케이블로 연결된 샤모니의 베스트 전망대인 브레방(Le Brévent)으로 향하여 여력을 다합니다. 시즌이 끝나 을씨년스러운 브레방 전망대에 서면 눈부시게 흰빛을 발하는 만년설을 품은 몽블랑이 눈에 가득찹니다. 에귀 드 미디 첨봉과 드류 연봉들의 호위를 받고 있는 최고봉 흰산 몽블랑의 자태와 발아래 펼쳐진 샤모니 계곡의 정감어린 풍경은 오랜 종주의 보상으로 충분합니다.

하산을 마감하고 종주를 끝내는 순간입니다. 알프스의 변방에서 알프스의 심장으로 한발한발 깊숙이 들어가는 이 여정. 행복했습니다. 승전보를 알리는 전사들처럼 샤모니 도심에 입성하여 거리를 가르는데 괜히 두 어깨에 힘이 들어갑니다. 변함없이 샤모니를 적시며 녹색으로 흐르는 아르브 강(Arve)이 반겨주고 몽블랑을 초등한 알피니스들. 파카드. 자크 발마 그리고 소쉬르. 이들이 반갑게 우리를 영접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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